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한산성 행궁 (문단 편집) === 활용 === [[병자호란]] 이후에는 지리적으로 [[세종대왕]]의 [[영릉(세종)|영릉(英陵)]]과 17대 [[효종(조선)|효종]]의 [[영릉(효종)|영릉(寧陵)]]이 있는 [[여주시]]와 근접하여서 19대 [[숙종(조선)|숙종]], 21대 [[영조]], 22대 [[정조(조선)|정조]] 등이 영녕릉 참배를 위해 이곳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. > {{{+1 '''[[남한산성]] 행궁에 있다가 감회가 일다'''}}} >천연의 금탄성지가 왕기를 진무하고 >봉황 날고 용이 서려 대궐을 옹위하네 >군영에 달이 밝아 딱따기 소리 들려오고 >행궁에 바람 빨라 피리 소리 드무네 >험천[* 병자호란 중이었던 1636년 12월 29일에 있었던 전투를 뜻한다.]에 비가 내려 마음이 아프고 >쌍령[* 병자호란 중 조선군이 패배한 전투가 있었던 곳.]에 구름 짙어 슬픔이 더해지네 >조정 계책 좋지 않아 진실로 한스러우니 >충신과 의사가 옷자락에 눈물 적셨네 >---- >[[열성어제]][* 김남기 번역본] 숙종은 이곳에 머물며 병자호란에 관한 시를 썼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